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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인생탐구 -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핑계 본문

Phliosophy/20대 삶의 철학

[기록] 인생탐구 -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핑계

COM2IT 2020. 12. 2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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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나은 선택이 분명히 있음에도 하지 않는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분명히 유튜브나 게임을 하고 있을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한다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를 못한다. 그런 이유를 대부분 그 과정이 힘들어서 또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어서라고 치부하고 만다.

 

그러나 이 말은 착각에 불과하다. 내가 하기 싫어서 안한 것을 이리저리 핑계를 댄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원인론적인 분석은 내가 과거의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서 현재에 내가 정해진다.

 

'나는 유튜브와 게임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적론적인 분석은 이와는 반대로 해석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유튜브와 게임을 했다.'

 

어찌보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르게 보인다.

나는 아무것도 안함으로써 얻는 것이 무엇일까?


현재의 자신에 대한 부정 = 자기 보호 본능

 

현재의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기 싫어서,

'내가 공부만 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라면 과거를 후회하는 동시에

'내가 공부만 한다고 결심하면 해낼 수 있어' 라는 자신이 이걸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안 한것이라는 말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현재의 나를 마치 일부러 안하는 사람인 것처럼 포장해서 자신의 기분을 보호한다.

즉, 생존적인 면에서 당장의 고통을 받는 것 보다는 유흥과 쾌락을 즐기며 있다가, 추후에 고통받는 결과에 대해서는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사람은 생존적인 면에 유리하게 진화해왔다.

생명체의 탄생 때 부터 이미 이것은 진화해왔다.

왜냐하면 만약에 생명체가 생존을 하도록 설계 되있지 않았다면. 바로 그 세대에서 멸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알 수 있는것은 '생존하기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체의 대전제와 같다.

이 대전제 때문에 생명은 어떤 자극에 대하여 고통과 쾌락을 받도록 설계되는 길로 진화해왔다.

식욕,수면욕,성욕과 같은 욕구들은 추구하면 생존의 확률이 높아지고,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받는 순간 그것을 기피하면 생존의 확률이 높아진다.

 

옛날에는 이것이 통했다.

단지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건 육체적 감각 뿐이었다.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에서 비롯된 것이 대다수 였다.

 

하지만 현대에는 육체적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적어졌다.

세계대전 이후에 전쟁은 급격히 줄었고, 평화를 선언하고, 기구를 설립하고,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되면서 서로간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현대에도 테러나 유행병, 방사능 같은 위험요소가 더 늘지 않았냐라고 하겠지만

분명한건 지금 시대는 이전보다는 훨씬 안전하다.

의학은 발전했고, 주거환경은 좋아졌으며, 식량의 생산성이 높아져서 그 질과 양이 풍부하다.

따라서 굶거나 얼어 죽는 사람은 줄었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좋아졌으며, 위생 또한 좋아졌다.

 


현대에서 자기 보호 본능은 비효율적

 

반대로 이렇게 현대 인간의 환경은 빠르게 발전한데 비해 인간 자체는 그다지 원시시대랑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점은 없다. 고통을 싫어하고, 기름지고 단음식을 찾으며,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은 현대의 삶에서 살아가는 방식에는 맞지 않다.

 

왜냐하면 생존을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면 모든 활동들이 제한 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슨, 목숨을 최고로 하게 되면 근시안적인 시야를 가지게 되고,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며, 무책임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애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조금 더 부연 설명 하자면, 목숨이 하나이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 잃으면 안된다는 불안감이 작용해서, 미래와 비전을 보지 못하고 당장의 현재에만 갇혀서 아무것도 도전하려하지 않는다. 그저 꼬박꼬박 삶을 연장할 수 있고, 미래가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당장의 한국의 상황만 보아도 그렇다. 한국의 청년들은 아직도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기성세대의 압박으로 인해서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교사,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 주는 직업을 꿈으로 가진 아이들이 많다. 중국의 20~30대 청년들은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은것에 비해 반대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안정적 수입을 가져오는 직업의 특징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무책임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오히려 이러한 직업을 가지는 것을 꿈으로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돈의 액수가 그다지 큰것도 아닐 뿐더러, 적은돈에 비해서 무책임하게 일한것에 대해 받는 것이기 때문에 돈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의 꿈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만족하면서 산다면 그것 자체로 완벽하다.

하지만 아무 이유없이 단지 돈이 안정적으로 들어와서 선택한 직업이라면, 그만 두는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확실한 것만을 찾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보호 본능에 의한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확실히 생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거야? 도전을 하라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방식은 먹히지 않는다.

안정적인 직업의 수는 정해져있지만 수요가 많기 때문에 월급이 적다. 월급이 적은 만큼 살아가는 데 조금 빡빡한 느낌도 든다. 월세내고 관리비내고, 휴대폰값, 카드값등등 빠지고 나면 남는건 겨우 몇십만원이고 이 돈을 가지고 교통비, 식비를 해결해야하는데 돈을 쌓을 수나 있을까. 연애는 사치고, 어렵게 연애를 이어가도 결혼하고 싶다고 해도 자금이 없고, 어찌저찌 결혼 해도 집이 없다. 앞으로 월급을 받고 살아갈 사회 초년생들의 대다수의 미래가 그러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가지는 특징들이 있다.

첫째, 돈을 많이 벌지 못하니 부자가 될 가능성이 적다고 느낀다.

둘째, 부자가 되고 싶다고 느끼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재태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셋째, 몇번의 실패를 겪고나면, 그냥 조용히 직장이나 다닐걸 이라고 후회하면서 다시는 손에 안대거나 원금 복구 심리로 인해서 패닉상태에 빠지고 결국 도박에 빠진다.

 

이러면 경제적 자유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가만히 넋 놓고 앉아서 돈만 모으면 되겠지라는 마인드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돈을 쫓는 것은 절대로 돈을 잡을 수 없다는 말이라는 명언이 생각이 난다.

경제적 자유는 가만히 있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무엇이든간에 도전을 해야한다.

 

여기서 도전이라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더 나은 길을 선택 하는 것에 있어서 책임을 가지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말고, 끝까지 나아가라는 말이다.

 

말이 너무 추상적인것 같아서 좀 더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만약 내가 생각 했을 때 이 일을 해냈을때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일단 시작해보라. 그리고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현재 내가 해야할 일에 대해서 반드시 끝내야 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끝까지 마쳐라.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당신은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인정함으로써 배울 점을 찾아서 다음 도전에는 더 나은 발판으로 남게되어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게 된다.

 


결론

현대에는 목숨을 크게 위협 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도전을 하는 것이 삶의 방식에 맞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유명한 에디슨의 일화가 떠오른다. 에디슨은 상용이 가능한 전구 하나를 발명하기 위해 천번이 넘는 실험을 했다.

천번의 실패 , 한번의 성공

한번의 성공이 천번의 실패를 모두 상쇄한 것이다.

 

내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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